늘 더디고 힘든 이유

2022-02-27



이 모든 것이 나의 무의식의 계획과 실행이라는 걸 인정한다. 마당, 강아지, 밭을 원해왔던 나의 무의식이 마침 슈퍼 재계약 기간이 끝난 아부지를 강원도로 가시라고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을 매우 인정한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고 질러버리는 습관의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알고 있다. 그 가장 큰 단점은, 주변 사람들이 고생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나이든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시느라 1년반동안 고생이 많으셨지.

그래도 코로나 전에 슈퍼를 손해안보고 넘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있어.


 

<일년 전에 같은 동네 장할머니랑 같이 면중심지에 가서 아부지 인생의 첫번째 농사 모종 사던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그리하여 바야흐로 이 시골집 렌트를 한지 1년이 지나고 2년을 향해 가고있다. 

그리고 지난 한달동안 집안을 드디어! 손봤다. 

8월 6일에 폐기물 사장님과 잔뜩 작업해서 내보내고, 

그 후로 지금까지도 부엌과 내 방을 좀 더 쓸모있고 봐줄 수 있는 정도로 Rearranging 하고 있다. 

1년전에 했어야 하는 일을 어째서 이제야 하게 되었나 싶다가도, 아 지금이라도 해냈다! 싶은 성취감.


43년생인 아부지는 올해로 만77세이시니까, 우리나이로는 거의 팔십이신 셈이다. 이렇게 건강하신게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역시, 나이가 들면서 변화라던가, 희망이라던가 그런건 어려운거다. 

열심히 살고 계시지만, 빌린 집에 철없어보이는 딸내미가 백만원"씩이나" 들여서 (제 나름은 최저가입니다만 ㅠ) 뭔가를 고치겠다는게 영 마음에 안드시는거다. 싱크가 삭고 바닥이 뜯겨도 그 돈으로 나가서 자식녀석 커피를 사마시라고 하는게 노인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국룰이지, 암. 다만 그게 아부지가 되었다는게 영 어색하지만.

그리하여 아부지가 이 상황(내가 이 공간을 '더 나아지게 변화'시키는데에 돈을 쓰겠다는 상황)을 납득하게 만드는데에 정말 긴 시간이 흐른거다. 정말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시간을 이렇게나 들여서 결국 초저가공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감개무량.



늘 더디다. 그리고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나이든 아부지와 같이 변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말이다. 

이게 다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해, 그냥 그시간에 나가서 돈벌어서 그럴싸하게 살기 위해 뭔가를 해내는게 말이 되지, 생각도 할 때가 있다.


근데 그래도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뭘까 또 그런 생각을 동시에 한다. 왜 이러는거냐.

나는 어쩌면 '대규모로 바꾸는 것'에 조금 지친 것 같다. 

언젠가는 그리해야 할 날이 오겠지만, 조금씩 바꿔가는 것의 즐거움을 당분간 느끼면서 지내고 싶다.


슈마허컬리지시절 '좋은 영어'를 듣고 쓰면서 제일 마음에 참 들었던 말은 'Holding a space' 혹은 'Holding a place' 였다. 

공간을, 장소를, 잡고 있는 것. 그 마음과 그 사람에게 늘 고마워하고 경의를 표현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결국 내가 해내고 싶고 해내기 생소하고 어려운 경지이지 싶어서 마음에 깊게 남았다. 

들고 나는 행위, 새롭게 만드는 행위를 반복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지. 

그래서 더더욱, 좋아했는데 사라진 가게나 음식점들이 그렇게 아쉬웠고.


결국은 이 집도 빌린 집이니까,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있는 동안은 제대로 차분하게 Holding 하고 싶다. 

더디고 힘든 과정이 언제나 있겠지만, 차근히, 여유롭게, 하지만 타이밍은 놓치지말고. 조큼씩.


Sep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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